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RPG-7

 

보병의 강펀치, RPG-7


 

1차 대전 말 프랑스 전선에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전차는 전장의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강력한 화력에 두꺼운 장갑을 걸친 강철의 이 괴물은 이제까지의 전투 양상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죠. 사실 수십 톤(현재 각국의 주력 전차의 중량은 40~50톤 사이)이나 나가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포탄과 기관총탄을 흩뿌리며 돌진해 오는 무시무시한 광경은 적 보병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괴물을 처치할 수 있는 변변한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전차 Mark-1.

2차 대전 초기만 해도 대전차포, 대구경 소총에서 발사하는 철갑탄과 화염병 이외에는 전차를 저지할 뾰족한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철갑의 두께가 비교적 얇던 전쟁 초창기에나 먹혔던 방법이지, 전차가 중장갑을 두르기 시작한 전쟁 후기에는 아무리 철갑탄을 쏟아 부어 봐야 말 그대로 이빨도 먹혀들어 가지 못했죠. 특히 전쟁 말기 연합국의 압도적인 물량전에 밀려 그야말로 '몸빵'을 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독일군 입장에선 악몽 같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킨(그래봐야 전쟁의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병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독일이 개발한 '팬저 파우스트'  (Panzerfaust) 였습니다.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의 14.5mm 대전차총.

보병의 휴대용 대전차 로켓 발사기였던 '팬저 파우스트'는 사정거리라야 고작 60m에 불과했지만, 당시 연합군이 보유한 모든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파괴력을 자랑했습니다. '팬저 파우스트'가 이런 위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른바 '먼로 효과'때문이었죠. 간단히 설명하자면 1880년 미국의 과학자 먼로는 폭약 앞에 원뿔 모양의 '덧입힘쇠'(Liner)를 설치해서 폭발 시키면 폭발력이 한 방향으로 집중되면서, 폭발순간에 발생하는 고온, 고압의 메탈 제트가 초속 7~8km의 속도로 철판을 관통하여 순식간에 온도를 섭씨 3천도까지 끌어올리는 현상을 발견했죠. 20세기 초 독일과학자 노이먼은 먼로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이른바 '성형작약탄'을 개발해 내기에 이릅니다. 일종의 화학 에너지탄인 '성형작약탄'은 운동에너지를 이용한 다른 포탄과는 달리 탄두를 회전시키면 오히려 원심력에 의해 몬로 효과가 상쇄되기 때문에 포신에 강선이 없는 활강포로 발사해야했죠. 또한 '먼로 효과'는 질량과 속도 등의 운동에너지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탄두의 속도가 느려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성형작약탄'의 이 두 가지 특성은 보병들이 간단히 휴대할 수 있는 간이 발사통으로도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했고, 수많은 서방 연합군과 소련군의 전차들을 불타오르는 철의 '관'(棺)으로 만들었습니다.

1943년 등장한 독일군의 '팬저 파우스트'는 보병에게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2차대전 종전후 소련은 노획한 독일군의 '판저 파우스트'를 모방해 'RPG-2'를 생산해 냅니다. ‘RPG’는 러시아어로 ‘대전차탄 발사기’를 뜻하는 'Ruchnoy Protivotankovy Granatomyot'의 약자를 딴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RPG-2의 약점인 짧은 사거리를 연장시키기 위해 발사기를 재설계해 추진 장약의 폭발 압력을 높이고, 탄두 자체에도 추진용 로켓을 붙이는 등의 개량을 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RPG-7'이었죠. 이 무기의 유효 사거리는 고정된 표적에 대해서는 300m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비교적 간단한 구조는 싼값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했고, 그 단순한 설계만큼 고장 없는 신뢰성을 자랑했습니다. 1961년 최초 생산된 RPG-7은 곧 소련군과 바르샤바 조약군의 제식무기로 자리 잡았고 북한과 중국 등에서도 생산되었죠. 특히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던 중동지역과 아프리카에는 엄청난 숫자의 RPG-7이 유입되었습니다.

북한 인민군에서는 통상 '7호 발사관'이라고 부르는 RPG-7이 보병 분대당 1개씩 편제 되어 있습니다.

발사대의 무게가 약 7kg, 거기다 탄두의 하나의 무게를 합쳐도 10kg정도인 RPG-7의 용이한 휴대성은 보병이 꽤 많은 숫자의 예비탄두를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했고, 330mm의 장갑을 뚫을 수 있는 관통력(신형 PG-7VR 탄두일 경우 약 700mm의 철판 관통)은 비록 비정규 전력일지라도 적군의 전차나 장갑차와 '맞짱' 뜰 수 있는 힘을 제공했습니다. 원리와 구조가 간단한 만큼 '누구나 한 번만 쏘면 전유성만큼 한다'할 정도로 몇 분의 교육만으로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죠.

RPG-7 발사기(위)와 탄두(아래).

제 3세계의 분쟁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RPG-7은 대부분이 그 간단한 광학식 조준기도 생략된 염가 모델이었지만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병기의 생산자인 소련도 RPG-7에 의해 쩔쩔 맨 경험이 있으니 바로 아프가니스탄과 체첸에서였죠. 특히 1994년 12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 돌입한 소련군 '마이코프' 여단은 3일 만에 보유전차 26대 중 20대, 보병 전투차 120대 중 102대를 잃었는데 그 대부분이 RPG-7에 의한 피해였습니다. 체첸군의 효율적인 전투조직은 저격수와 기관총이 소련군 보병을 잡고 있는 동안 RPG-7 사수가 소련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로켓탄을 날렸죠. RPG-7이 지상의 목표물에만 위력적인 것은 아니었으니, 1994년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는 미군 블랙호크 헬리콥터 2대가 민병대의 RPG-7에 의해 격추되기도 했습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작전에 나선 미 육군의 블랙호크 헬리콥터가 RPG-7에 의해 격추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영화 '블랙호크 다운'의 한 장면.

이 효과적인 대전차 무기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먼저 발사시에 후방 30m까지 내뿜어지는 강력한 후폭풍 때문에 꽉 막힌 실내에서는 사용하기가 아주 곤란하다는 점이죠. 실제로 조심성 없는 사수는 이 후폭풍으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RPG-7의 폭발방식인데, 목표에 탄두가 닿으면 발생하는 전기 충격으로 뇌관을 터트리는 '압전식' 탄두 때문에 목표에 닿기 전 철망에 걸리면 누전이 되어 불발탄이 되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이라크에서는 미군들이 자신들의 장갑차량에 철망형의 ‘SLAT’ 장갑을 두르고 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의 미군 사상자를 원인별로 분석한 결과, 첫 번째가 급조폭발물에 의한 것이고, 두 번째가 RPG-7에 의한 피해라는 통계를 보면 저항세력이 가지고 있을 수만 개의 RPG-7은 당분간 점령군의 골치를 아프게 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SLAT' 장갑을 장착한 미군의 '스트라이커' 장갑차

 

[출처] http://blog.ohmynews.com/gompd/14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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