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우리 공군이 만약 F-4 팬텀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우리 공군이 만약 F-4 팬텀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홍희범

▲2009년 현재 운용중인 F-4D 팬텀. 공군 제공 사진

1969년, 우리나라는 F-4D 팬텀2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팬텀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의 공군력은 명실공히 업그레이드되었고, 일단 F-4계열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 뒤로도 F-4D의 추가 도입은 물론 개량형인 F-4E형의 도입까지 이어지면서 1980년대 초반까지 말 그대로 ‘일본도 그리 부럽지 않은’ 전투기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팬텀의 도입은 우리 공군의 시야를 크게 넓히는데 기여했다- 팬텀의 등장으로 우리 공군은 대지공격의 범위와 화력을 비약적으로 넓힐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장거리 레이더를 갖춘 BVR전투기’를 일찍부터 운용하면서 당시 우리 국력에 비해 한 발 앞선 항공전 개념을 터득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그 때 들어온 기체가 팬텀이 아니라 다른 기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팬텀은 1969년 시점에서 우리 공군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최강의 전투기였다. 공군 제공 사진

물론 역사에는 ‘만약’은 없다. 하지만 1960년대 중~후반에 우리나라에 팬텀이 아니라 다른 기체가 들어왔을 가능성은 예상외로 높다.
애당초 팬텀은 미군이 다른 나라에 쉽게 넘겨주고 싶은 무기가 아니었고, 넘겨준다 치면 이스라엘이나 일본, 영국같은 최고 우방국들에 한정된 이야기였다(그러던 것이 대표적인 미국제 수출 전투기가 되었으니…). 게다가 제 돈 주고 신품을 수입하는 것도 아닌 사실상 원조를 받는 입장이면 더더욱 그렇다.

아시아로 보자면 당시 가장 중요한 미국의 우방으로 여겨지던 대만과 일본은 모두 F-104로 무장하고 있었다. 팬텀은 상당히 공세적인 무기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그 때문에 원래부터 방공전투기로 계획된 F-104가 낫다고 여겨진 것이다. 물론 대만과 일본은 1960년대 초반부터 도입을 한 입장이니 팬텀을 살래야 살 수 없던 시기라는 이유도 감안해야겠지만, 대만같은 경우 결국 단 한 대의 팬텀도 도입하지 못했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역설적으로 팬텀은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성능의 기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은 제1공화국 시절부터 우리나라에 공격적 성격의 무기를 주는 것을 꺼려왔다.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부터 시작해 군사정권으로 시작된 박정희 대통령의 제3 공화국 정권까지, 미국이 보기에는 우리나라는 능력과 여건이 되면 당장 ‘북진통일’을 하려 달려들 나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F-4D를, 그것도 핵폭탄 장착 능력 빼고는 전부 제 성능대로 준 것은 그만큼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반증이지만, 그래도 안되겠다고 F-4D가 아닌 다른 기체를 줬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사실 이런 저런 자료를 보면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F-4D 이외의 다른 기체를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보인다. 비록 출처가 확실하지 않고, 또 언론들이 군사 지식이 없다보니 정확히 어떤 기체가 제안됐는지 분명하지 않기는 하지만 다른 기체들이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 만큼은 맞을 것 같다.

1) F-104

아마 가장 확률이 높은 기체는 F-104일 것 같다. 사실 당시에 F-104는 NATO국가 대부분, 대만, 일본이 보유한 대표적인 해외 수출용 기체였는데다 상당히 방어적인 성격의 기체였고 크기도 비교적 작았기 때문이다. 또 대만같은 경우는 성공적으로 방공 임무를 수행했으니 미국으로서는 ‘욕심 부리지 말고 F-104나 써~’라고 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F-104가 들어왔다면 우리 공군 입장에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서독 공군 같은(보유 기체의 30%를 잃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서독 공군의 F-104G. 조종사가 멀쩡하게 착륙할 확률과 낙하산으로 탈출해 걸어 들어올 확률이 비슷하다는 농담도 있었지만, 전체 보유댓수의 약 30%가 사고로 상실됐으니 그냥 농담으로만 치부하기는 좀...

아무리 우리 공군 정비사들이 실력 좋고 열심히 일한다 해도, F-104는 근본적으로 속도를 중시한 고고도 방공 전투기다. 저공 비행성능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고, 실제로 서독 공군이 많은 숫자를 잃은 이유도 저공비행이 필요한 공격기 역할까지 겸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공군 역시 지상공격 능력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입장이다. 그냥 방공만 하고 있기에는 북한 지상군이 우리 전선에 가할 압박이 너무 크니 말이다. 그렇다면 좋든 싫든 F-104를 이용한 각종 저공 비행및 지상공격 훈련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다른 곳도 아닌 우리나라의 산악 지형에서라면 F-104의 저공 비행이 어떤 사고로 연결됐을까?

이런 이유도 있고, 또 F-104자체가 70년대부터 빠르게 구식화된 기체라는 점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F-4D는 미국 자신도 1992년까지 운용한 기체지만 F-104는 미군에서 70년대에 전부 퇴역했고, 미국 밖에서도 이탈리아와 대만을 제외한 운용국 거의 대부분이 80년대가 되기 무섭게 무더기로 퇴역시켰다. 사실 F-4계열이 당시의 전투기 치고는 지나치게 걸출한 것이지, 1950년대에 개발된 전투기들만 해도 운용 예상시간이 짧은 일종의 ‘소모품’같은 개념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어쨌든 F-104의 수명이 짧았던 것은 사실이다.

대만처럼 고성능 전투기 도입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나라조차 죽어라고 F-104를 90년대에 다 퇴역시킨 것을 보면 아마 우리 공군의 F-104역시 잘 해야 90년대 중반을 못 넘기고 다 퇴역했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나라가 대만처럼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무기를 도입하는데 제약이 많은 입장도 아닌 것을 감안하면 아마 90년대가 되기도 전에 대부분이 퇴역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만은 90년대 후반까지 F-104계열을 썼지만, 대만도 쓰고 싶어서 계속 쓴 것이 아니고 미국 역시 주고 싶어서 계속 준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미국은 노후기체 보충을 위해 자위대나 NATO등의 퇴역기체까지 대만에 제공했다

물론 F-104도 1969년의 시점에서 없는 것 보다는 우리 공군에 백배 나은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방공능력에서는 당시 우리 공군의 F-5A나 F-86D, F-86F에 비해 분명히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F-4와 F-104중 양자택일을 하라면 아무래도 F-4가 낫다- 게다가 F-104운용국들 중 몇몇 나라들은 결국 F-104가 퇴역하기 전에 F-4계열도 일찌감치 도입한 사례(스페인, 일본, 독일)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나중에 F-4계열을 또 도입했을지도 모른다.

즉 1969년에 F-104가 도입됐다면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F-4D가 들어온 실제 상황보다 아무리 잘 봐줘도 나을 것은 없고, 잘못하면 애꿎은 조종사들만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만약 미국이 F-104를 주겠다고 제안했다면, 그것을 거절한 당시 정권은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F-102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일부 자료에는 미국이 F-102를 당시에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빙성이 그리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미국이 실제로 터키에 비슷한 시기에 50대를 원조했기 때문이다.

F-102는 미국 본토방공용으로 만들어지고 사용된(물론 해외 기지에도 방공용으로 배치됐지만) 기체였다. 따라서 이론상으로 보면 방공용 기체로는 최강이지만, 이게 과연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기체냐 하면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이다. 차라리 F-104를 받는 편이 백배천배 낫다. 미국 자신도 주방위군 용도로조차 1976년에 모든 F-102가 퇴역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F-102는 F-104보다 더 지독하게 요격전용, 그것도 폭격기 요격용으로 만들어진 기체다. 따라서 속도는 빠르지만 기동성이 잘 나올지는 의문이고, 실제로 터키 공군의 F-102가 그리스 공군의 F-5A에게 격추된 일도 있다. 베트남에도 미 공군에 의해 파견이 되기는 했지만 공중전 실적은 없다- 소문에 의하면 한 대가 미그21에 격추됐다고 하지만, 적어도 격추한 적기가 없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이걸 받느니 차라리 F-104를 받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를 F-102. 베트남에서 미그기를 단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격추당하기만 했다는 소문까지 있다. 적어도 F-104는 미그21 상대로 무시 못할 전과를 올린 것과 비교하면....

즉 북한 공군과 실제로 전투기끼리 공중전을 벌일 상황이 되면 열세에 놓일 가능성도 충분하지만(기관포도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기체가 지상공격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제한적인 대지공격을 실시한 일은 있으나 그 실적은 신통찮다. 대지공격 무장이래봐야 로켓 정도인데, 이래서는 팬텀은 커녕 F-104처럼 운용되기도 힘들다. 1960~70년대의 우리 공군은 요격 전문기 따로, 지상공격 전문기 따로 운용할 만큼 여유있는 공군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무시 못할 문제다.

유지보수에도 애로사항이 말 그대로 화려하게 꽃필 것이다. F-102는 F-4계열처럼 많은 나라가 쓰는 기체도 아니었고 미국 자신도 조기퇴역시킨 기체이니 말이다. 특히 무장인 팰컨 미사일은 미국 자신의 평가조차 매우 야박한 물건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F-102의 도입 역시 얼마간 우리 공군을 꽤 애먹이다가 결국 팬텀으로 대체됐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우리가 정말 이것을 받아들였다면 박정희 정권이 내린 최악의 군사적 결정중 하나가 되겠지만, 일단 제안이 이뤄졌는지도 불분명한데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설령 제안이 이뤄졌다 해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은 점은 지극히 다행이다.

3) F-106

F-106이 제안되었다는 소문도 있는데(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사실 F-106역시 F-102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실정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기체다.

▲F-106은 우수한 전투기이지만 우리가 운용하기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F-106은 원래 ‘컴퓨터와 데이터링크에 의한 원격조종, 그리고 미사일에 너무 기대가 강한 시대’에 맞는 기체였다. 놀랍게도 이 기체는 지상으로부터의 원격 조종과 컴퓨터 통제에 의해 적기를 향해 날아가고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회피하는, 거의 무인 전투기나 다름없는 성격의 기체였다(F-102도 기본 개념은 비슷). 조종사는 말 그대로 이착륙과 돌발상황 대비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정말 발상 자체는 시대를 몇십년 앞서간 것이지만 현실은 아직 진공관이 쓰이던 1950년대 기술인 만큼 F-106의 유지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다. 유지 비용도 비쌌고, 정비 기술도 상당한 수준이 필요했다. 특히 MA-1 화기관제장치는 운용 기간중 무려 60차례나 개량이 요구될 지경이었다. 이미 이 단계에서 우리 정비사들이 F-106을 손봐야 했다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랐을 것 같다.

▲F-106의 화기관제 시스템인 MA-1의 구성품을 기체 밖으로 꺼낸 모습. 무려 200개의 블랙박스, 즉 현지 운용부대가 마음대로 뜯어볼 수 없는 블록들로 구성된 MA-1의 정비는 미 공군에서조차 정비사들을 애먹인 부분이었다

그래도 F-106은 F-102에 비하면 좀 낫다. 기동성이 예상외로 좋았고, 전투기와의 격투전 능력도 상당히 높을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공군은 이 기체를 베트남에 투입해 미그기와 싸우게 할 것까지 진지하게 검토됐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다.

또 1969년부터이기는 하지만 기관포(벌컨)도 탑재되기 시작했으므로 북한 전투기를 상대로 한 격투전도 충분히 가능했고, 실제로 1968년의 푸에블로호 사건 당시에는 미 공군의 F-106비행대가 우리나라에 잠시 주둔했던 일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지공격능력의 결여는 심각한 문제이고, 무엇보다도 외국에 수출이나 원조된 사례가 없다. 사실 F-106이 정말 우리나라에 팬텀 대신 제안되었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만약 받았다 해도 우리 공군에는 만만찮은 마이너스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준다고 무조건 받아도 되는게 아니다!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기사] 계란과 유난히 인연 깊은 노 전 대통령…역대 정치인들의 계란수난사

달걀 맞은 사람 많구만요...

대단한(!!!!!!!!) 조선일보라서인지  제일 큰 사진은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님 사진이구만요..

Berlusconi 아저씨 때문에 달걀 찾게 되고, 달걀 찾다 보니,, 역시나 노무현 대통령님이 나오시네요..
씁쓸합니다.

 

 

 

 

정치
종합

계란과 유난히 인연 깊은 노 전 대통령…역대 정치인들의 계란수난사

 

2002년 11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연설하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사람이 던진 달걀에 턱을 맞고 입을 감싸고 있다. 노 후보 옷에도 달걀이 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들어서는 순간 노 전 대통령이 탄 차량에 계란이 날아들었다.

과거를 들여다 보면 전직 대통령 뿐만 아니라 대선 후보와 국무총리 등 정치인들은 늘 계란의 ‘위협(?)’에 노출돼 왔다. 그 중 특히 노 전 대통령은 계란과 인연이 깊다.

1990년대 이후 정치인들의 ‘계란 수난사(史)’를 보면 ‘계란 봉변’은 단순한 항의를 표시하는 ‘해프닝’이 많았지만 정국의 흐름을 뒤바꾼 ‘역사적 사건’도 있었다.

◆ 노 전 대통령, 최다 계란봉변

노 전 대통령이 계란 세례를 받은 것은 지난달 30일을 포함해 모두 4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1시19분쯤 리무진 버스를 타고 대검청사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버스 쪽으로 신발 한 짝과 날계란 5~6개가 날아들었다. 투척된 계란 중 2~3개는 버스의 지붕 부분과 창문에 맞았다.

신발과 계란을 던진 사람은 보수단체 회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곰탕 특(特)’과 함께 계란 프라이를 반찬으로 먹었다.

노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계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0년. 당시 3당 합당에 반대했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역 앞 시민집회에서 계란을 맞았다.

이어 민주당 고문시절인 지난 2001년 5월에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방문했다가 계란세례를 받았고,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2002년 11월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 연설을 하는 도중 참석자가 던진 계란에 얼굴을 정확하게 맞았다.

당시 노 후보는 계란 봉변에도 얼굴을 닦은 뒤 연설을 끝까지 마쳤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계란 봉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한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풀리겠냐. 계란을 맞고 나면 문제가 잘 풀렸다”고 웃어넘겼다.

노 전 대통령에게 계란은 ‘부활’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5월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선고 당시 노사모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을 1만여개를 삶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

노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도 퇴임 이후 계란봉변을 당했다.

지난 1999년 6월 3일 퇴임 후 일본으로 첫 외국출장을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나왔던 김 전 대통령은 재미교포 박의정(당시 71세)가 던진 계란에 이마에 맞았다.

계란에는 빨간색 유성페인트가 들어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얼굴과 상의에 빨간색 페인트가 가득 묻은 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계획적이고 살인적인 행위”라며 정치테러설을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겨냥,“독재자 밑에서 국민들이 고생한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배후를) 찾아내면 내가 상을 주겠다”고 했다.

경찰은 박씨를 구속하고 배후에 대해 조사했으나 결국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11월 17일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거행된 ‘국난극복 참회 대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 이순자 여사 등 일행과 함께 광주공항에 도착,차량을 타고 정문을 빠져나가다 20~30대 청년 5~6명에게 날계란 세례를 받았다.

지방순회 중인 무소속 이회창 대선후보가 1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방문 중 한 시민이 던진 계란에 맞아 보좌관들이 다급히 에워싸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후보들도 잇따라 수난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대선 후보 시절 계란 때문에 수난을 당했다.

이 총재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지난 2007년 11월 13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이모(32)씨가 던진 달걀 두개에 이마와 볼을 맞았다.

이씨는 현장에서 지지자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이 후보는 이후 “계란 마사지를 받아 얼굴이 예뻐졌다”는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경찰은 이틀 뒤 이씨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석방했다.

이어 그해 12월 3일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경기도 의정부 중앙로 앞 거리 유세에 들어가기 위해 차량 연단에 오르던 중 왼쪽 허리 부근에 계란을 맞았다.

달걀을 던진 사람은 스님 복장을 한 50~60대 남성이었다.

이 후보는 코트의 가슴 및 왼쪽 허리 부분에 계란이 묻은 채 곧바로 바로 연설에 들어갔다. 이 남성이 뿌린 전단지에는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이 후보는 즉각 사퇴하고 검찰은 BBK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선거 폭력이나 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더욱 그런 폭력이나 테러에 혹 배후가 있다면 이는 선거 자체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경찰의 철저한 조사를촉구했다.

2002년 대선에 출마했던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도 그해 11월 18일 광주 5·18 국립묘지 추모탑을 참배하다 5·18 청년동지회원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장 전 부장은 수행원들과 경찰의 경호 덕분에 계란에 맞지는 않았다.

노 전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는 계란 봉변에 대해 농담으로 반응한 반면 이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테러 배후설”을 주장해 엇갈린 반응을 보인 점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보수파인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도 지난 2007년 7월 19일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계란 봉변’을 당했다.

 당시 당 평화통일특위 위원장이었던 정 의원은 이날 낮 12시 30분쯤 재향군인회의 원로자문위원회 회의에서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서울 신천 향군회관을 방문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대북정책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던진 계란에 얼굴을 정확히 맞았다.

정 최고위원은 이후 향군회관 경비들의 경호를 받으며 서둘러 12층 행사장으로 올라갔고, 향군측이 준비한 새 셔츠로 갈아 입고 한반도 평화비전을 역설했다.

◆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의 계란 봉변

계란 봉변이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정국에 큰 파장을 준 적도 있다.

지난 1991년 6월 3일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서울 외국어대 대학원에서 특강을 하고 나오다 학부 학생들에게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외대 학생들은 더구나 정 총리 서리의 멱살과 허리끝 등을 붙잡은 채 끌고 다니면서 주먹질과 발길질까지 했다.

당시는 명지대생 강경대씨와 성균관대생 김귀정씨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망해 노태우 정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였다.

학생들은 마지막 강의에 나선 정 총리 서리에 대해 “외대의 수치”라고 항의하며 이같은 계란 세례를 했다.

그러나 ‘계란봉변’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당시 학생들은 “반인륜적인 폭력” “스승을 때린 패륜아”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고,이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되면서 1987년 6월항쟁을 방불케하던 그해 5월 시위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기사] 연설장서 봉변…콧대 주저앉은 베를루스코니

어찌하여 이리도 식성과 국민성이 같은지......

마늘 좋아할때부터 정이 가더니.....

불의(?)를 보지못하고 막 집어 던지는([동사] 1. 손에 든 물건을 다른 곳에 떨어지게 팔과 손목을 움직여 공중으로 내보내다.)   것은 여기나. 거기나... 쯔쯔..

그래도 여기나 훨 낫네..  얼굴이 상하는 게 아니라 계란이 상하는 쪽으로 울트라 캡송 배려 해주는 국민성이.

 

 

 

 

연설장서 봉변…콧대 주저앉은 베를루스코니
40대 남성 던진 성당모형 조각상 맞고 코뼈·이 부러져
“성추문·부패 등 부적절한 행동이 사태 유발” 비판 일어
한겨레 조일준 기자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13일 로마 밀라노 광장에서 한 남성이 던진 조각상에 얼굴을 맞아 피를 흘리며 긴급히 사고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밀라노/AP 연합뉴스
온갖 성추문과 부패 시비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콧대’가 주저앉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3일 저녁 로마 밀라노 광장에서 열린 집권 자유국민당 집회에서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에게 사인을 해주던 중 마시모 타르탈리아(42)라는 남성이 던진 성당 모형 조각상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고 쓰러졌다고 현지 <안사>(ANSA)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입술과 코 주변이 피범벅이 된 채 인근 병원으로 긴급이송됐으며,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 코뼈 일부가 무너지고 치아 2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끔찍한 돌발상황은 고스란히 국영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주치의인 알베르토 찬그릴로는 “(총리가)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윗입술의 상처는 봉합수술을 해야 한다”며 “완치까지는 수주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보좌관들과 동료 정치인들에게 “난 괜찮아, 난 여전히 건재하고 그들은 날 막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상처가 깊어 14일 입원을 하루 연장했다.

이탈리아 검찰은 조각상을 던진 타르탈리아를 현장에서 붙잡아 범행 동기와 배경을 수사중이다. 검찰은 타르탈리아가 범죄 전과는 없으나 지난 10년간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총리에 대한 조각상 공격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쪽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반대자의 소행으로 의심하는 반면, 비판 진영 일부에선 베를루스코니의 부적절한 처신과 부패 혐의가 자초한 사태라는 논평도 내놓아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움베르토 보시 북부동맹당 당수는 “그들이 총리에게 한 짓은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제1야당인 민주당의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총재도 “이건 말도 안 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이탈리아 정치권 부패 수사를 이끌었던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출신 검사인 안토니오 피에트로 이탈리아가치당 의원은 “총리의 부적절한 행동과 ‘난 개의치 않아’ 식의 태도가 이번 폭력사태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인디펜던트> 온라인 기사에는 “그들은 내가 콜걸들과 잠자고 부패행위를 하는 것을 막지 못할 거야”라고 베를루스코니의 말을 패러디한 댓글이 붙었다.

이번 사태가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최악의 위기에 몰린 베를루스코니의 처지를 더욱 약화시키는 악재가 될지, 아니면 거센 역풍을 잠재우는 반전의 계기가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베를루스코니는 잇따른 혼외정사 추문으로 거액의 이혼 소송에 걸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탈세와 회계부정 등 부패 혐의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면책특권을 박탈당한 채 재판이 진행중이다. 최근엔 마피아 연루설까지 불거졌다. 지난 5일 로마에선 최소 10만명이 모여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불과 두 달 전 68.7%에 이르는 지지율을 자랑했던 것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창원색소폰 하모니 창단식(장인어른)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IT제품] HDR-TG5

메모리타잎의 캠코드로 순티타늄 본체와 긁힘 방지 고급 하드 코팅이 되어 있어 지름신이

강림하게 한 제품...

 

화질이야 소니 칼짜이즈렌즈이고,  Full-HD(1920 x 1080i Full HD), LCD 패널을 열기만해도 빠른 촬영시간, Smooth Slow Rec 등등.. 기존의 6MM 캠코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성능을 자랑하고 있다.

 

단 아쉬운 점은 AVC HD 16M(FH) 1920 x 1080i Full HD 모드에서 8GB메모리가  50여분밖에 촬영되지 않는점(뭐... 1920 x 1080i Full HD이니까 참아줄만은하지만)과 아쉬운 배터리 용량(계속 촬영하면 체감으로 30분정도)은 아쉽다 못해 아깝다..

배터리도 한개 더 구매해야하고, 메모리스틱도 여유분을 구매해야하니....

 

뭐 이게 소니의 정책이지 아닐까...... 

 

 

 

 

얇고 간결한 디자인

그레이와 실버의 투톤 마감으로 강조한 미니멀 디자인의 HDR-TG5는 시크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전 모델처럼 티타늄 본체를 채택했지만 더 부드러운 윤곽으로 한층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디스플레이

힌지, 나사, 스위치를 드러나지 않게 하여 얇고 간결한 외관을 만든 동시에, 대형 터치 패널 LCD는 더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아이콘을 채택하여 조작 편의성을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순티타늄 본체와 긁힘 방지 고급 하드 코팅

HDR-TG5는 순티타늄을 사용합니다. Handycam® 캠코더는 이처럼 강하고 가벼운 내식성 금속을 사용하여

매우 가볍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본체에 긁힘을 방지하는 고급 하드 코팅 마감을 적용하였습니다.

다양한 기능의 '개인용' 캠코더

소니가 개발한 고밀도 마운팅 기술과 소형화 기술의 결합으로 이 작은 개인용 AVCHD 캠코더가

탄생했습니다.

 이 캠코더는 Full HD 1920 x 1080i 동영상을 녹화할 수 있으며 Memory Stick 매체를 지원합니다. GPS 기능

및 손쉬운 PC 연결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능이 지원되어 간단하게 촬영하고 HD 동영상을 관리할 수

있는 최고의 모바일 도구입니다.

옵션 액세서리
광각 변환 렌즈

이 스타일리쉬한 변환 렌즈가 제공하는 넓은 시야로 모든 동작을 캡처해 보세요. 나사형 변환 렌즈와 달리

 Handycam® 렌즈 위로 가볍게 밀어서 장착할 수 있고, 0.7x 배율을 제공하므로 실내의 파티나 실외의 넓은

 풍경을 캡처하는 데 적합합니다. 이 품목은 별도 판매됩니다.

참고: 광각 변환 렌즈는 Handycam®을 광각으로 설정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WIDE ANGLE CAP

 

소프트 휴대용 케이스 LCS-TGB

Handycam®을 소프트 휴대용 케이스에 넣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바로 사용하세요. 두 개의 벨트 고리,

둥근 모서리, 슬림한 디자인으로 편안한 만큼 실용적으로 착용할 수 있으며, 쉽게 열리고 저절로 닫히는

자석 여닫이가 달려 있어 캠코더를 빠르게 꺼낼 수 있습니다. 가죽 질감의 고급스러운 블랙 케이스는

양각 로고가 새겨진 미러 마감으로 액센트를 주어 HDR-TG5의 티타늄 본체와 완벽하게 어울립니다.

Memory Stick 매체 한 개를 보관할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어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세미 소프트 휴대용 케이스 LCM-TGA

이 패셔너블한 세미 소프트 휴대용 케이스는 HDR-TG5를 보호하는 동시에 보완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외장에는 고급스러운 가죽 질감, 브러시 마감, 양각 로고가 새겨진 미러 마감을 채택했고, 내부는

부드러운 블랙 컬러와 둥근 윤곽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또한 쉽게 열리고 저절로 닫히는 자석 여닫이가

달려 있어 캠코더를 빠르게 꺼낼 수 있고, 벨트 고리와 Memory Stick 매체 한 개를 보관할 수 있는 편리한

 주머니가 있습니다. 색상은 브라운 한 가지입니다.